바둑과 부동산 2편. 포석이 반이다 — 경매 입찰 전, 고수는 이미 절반을 끝낸다

바둑에서 ‘포석(布石)’이란 초반에 돌을 배치하는 단계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았고, 집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고수들은 안다. 이 포석 단계에서 이미 게임의 절반이 결정된다는 것을.

부동산 경매도 정확히 같다. 입찰장에 들어서는 순간은 이미 한참 전부터 준비가 끝난 사람의 무대다. 그날 처음 물건을 보고 고민하다 손을 드는 사람은, 포석도 없이 바둑판에 앉은 셈이다.


경매 시장은 지금 어떤 판인가

바둑을 두기 전엔 오늘 어떤 판이 펼쳐질지 대략 예측해본다. 상대방의 기풍은 어떤지,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인지 — 그 파악이 포석의 방향을 결정한다.

2026년 경매 시장의 판은 꽤 복잡하다. 지지옥션이 발표한 2026년 4월 경매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낙찰률은 48.7%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낙찰가율도 100.5%로 반등했다. 물건 수는 줄었는데 경쟁은 오히려 치열해지는 흐름이다.

왜 그럴까. 매매 시장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가 강화되면서, 규제의 예외에 해당하는 경매 시장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가 15억 원 이하 중소형 아파트에 입찰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아파트 한 물건에 무려 29명이 입찰해 감정가의 109%에 낙찰된 사례는, 지금 경매판이 얼마나 달아올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지방은 다르다. 경매 진행 건수는 전국적으로 늘고 있지만, 지방 비핵심 지역은 낙찰이 지연되고 물건이 쌓이는 적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같은 경매 시장이지만, 서울과 지방은 완전히 다른 바둑판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포석의 첫 번째 — 물건보다 권리를 먼저 본다

경매 초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실수는 물건부터 보는 것이다. 위치가 좋아 보이고, 가격이 싸 보이면 일단 마음이 간다. 그런데 바둑에서 한 자리가 좋아 보인다고 무조건 두면 안 되듯이, 경매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권리 분석이 먼저다.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지, 말소되지 않는 권리가 붙어 있는지, 유치권 신고가 있는지 — 이것을 확인하지 않고 낙찰받는 건, 상대방의 함정 수를 보지 못하고 돌을 두는 것과 같다. 낙찰가가 아무리 싸도, 인수해야 할 권리가 붙어 있으면 실질적인 취득 비용은 훨씬 올라간다.

법원 경매정보 사이트(www.courtauction.go.kr)에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감정평가서 이 세 가지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포석의 시작이다. 귀찮더라도 등기부등본은 입찰 직전에 다시 한번 열람해야 한다. 상황은 바둑처럼 계속 바뀐다.


포석의 두 번째 — 현장을 직접 밟아본다

바둑에서 포석은 머릿속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판의 질감, 상대방의 분위기, 오늘 내 컨디션까지 — 모든 것을 직접 느끼며 감각을 켜는 과정이다. 경매도 마찬가지다. 서류로 확인한 것과 실제 현장은 다를 수 있다.

물건지를 직접 방문해 건물 상태를 확인하고, 점유자가 있다면 명도 난이도를 가늠해봐야 한다. 주변 시세를 인근 공인중개사 두세 곳을 통해 직접 물어보는 것도 필수다. 온라인 시세만 믿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이라도 층과 향, 내부 상태에 따라 실거래가 편차가 크다.

현장을 밟아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입찰가 차이는, 준비된 포석과 막연한 포석의 차이다.


포석의 세 번째 — 입찰가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쓴다

경매에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는 ‘이기고 싶어서’ 입찰가를 높이는 것이다. 경쟁자가 많아 보이면 불안해지고, 꼭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이성이 흐려진다. 그 순간 입찰가는 계산이 아니라 감정으로 써진다.

바둑에서 흥분해서 두는 수는 거의 예외 없이 실수다. 고수일수록 상황이 불리해도, 유리해도, 감정의 진폭이 작다. 입찰가는 철저하게 역산으로 계산해야 한다. 낙찰 후 취득세, 명도 비용, 수리비, 대출 이자, 예상 보유 기간 — 이 모든 것을 빼고도 내가 원하는 수익이 남는 금액이 적정 입찰가다. 그 금액을 미리 정해두고, 그 이상은 절대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포석의 마지막 단계다.


마치며 — 잘 두기보다 잘 준비한 사람이 이긴다

바둑에서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대국 중이 아니라 대국 전에 이미 시작된다. 준비된 포석이 있는 사람은 중반 이후 싸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경매도 같다. 입찰 당일의 판단력보다, 그 전까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가가 결과를 가른다.

경매는 싸게 사는 게임이 아니다. 제대로 준비한 사람이 적정 가격에 사는 게임이다.


본 글은 2026년 5월 기준 공개된 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 경매 투자는 권리 분석 등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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